한국 그룹사운드의 선구자, 기타리스트 김홍탁을 추모하며
2024년 12월 7일, 한국 그룹사운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기타리스트 김홍탁 님이 폐암 투병 끝에 향년 80세로 별세하셨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과 헌신은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과 업적을 되돌아보며 추모의 글을 남깁니다.
그룹사운드의 시작: 키보이스 결성
김홍탁 님은 인천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첫 그룹사운드로 알려진 키보이스를 결성하며 1964년 데뷔했습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멤버로는 보컬 차중락, 베이스 기타 차도균, 드럼 윤항기, 키보드 옥성빈이 있습니다. 그들의 첫 독집 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는 대한민국 그룹사운드의 첫 음반으로 기록되며 대중과 미8군 무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룹사운드의 선구자 역할을 한 키보이스는 대중에게 **‘한국의 비틀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당시 서구 대중음악이 막 국내에 전파되던 시기에 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새로운 도전: 히파이브와 히식스
키보이스를 떠난 김홍탁 님은 1968년 새로운 그룹 히파이브를 결성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초원’, ‘정 주고 내가 우네’, *‘메아리’*와 같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어 그룹 이름을 히식스로 변경해 활동을 확장했습니다.
히식스는 1집 타이틀곡 *‘초원의 사랑’*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들은 이후에도 ‘초원의 빛’, ‘물새의 노래’, ‘당신은 몰라’, ‘사랑의 상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
1995년, 김홍탁 님은 후배들과 함께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설립하며 젊은 음악가들의 양성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룹사운드 후배들과 교류하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도전은 한국 그룹사운드 역사를 집대성하기 위한 ‘그룹사운드 명예의 전당’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투병 중에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선후배 뮤지션을 인터뷰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힘썼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집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김홍탁 트리오와 마지막 작품
그는 예우회가 올해 4월 발표한 음반 *‘전설을 노래하다’*에 참여해 자신의 이름을 딴 **‘김홍탁 트리오’**로 신곡 *‘웃어보는 시간’*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그가 녹음한 마지막 음반으로, 그의 음악적 유산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기타의 개척자’로 기억될 김홍탁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를 “한국 그룹사운드 1세대의 상징”이자 “음악을 떠난 적이 없는 열정의 아이콘”으로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와 음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음악적 성공을 넘어서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는 헌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과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김홍탁 님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신 고 김홍탁 님을 추모하며, 그가 남긴 음악과 열정이 많은 이들에게 계속 울려 퍼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