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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근 별세, 1세대 분장사이자 배우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다. 향년 102세로 별세

by 도리킴 2025.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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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근 별세

배우 겸 1세대 분장사 송일근, 향년 102세로 별세

영화배우이자 1세대 분장사로 한국 영화 산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 온 송일근(본명 송민섭) 씨가 지난 3일 오후 2시 10분, 향년 10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고향인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 한국 영화 산업과 함께한 송일근 씨는 분장사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의 다양하고 풍성한 활동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인물입니다.

송일근, 평택에서 서울로… 연예계와의 첫 인연

송일근 씨는 1922년 12월 22일,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남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1939년 오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송일근 씨는 1942년, 서울의 조지야백화점에 채용되어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배우 고 이종철 씨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 인연은 그가 연예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종철의 추천으로 송일근 씨는 1942년 조선악극단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연예계와 연을 맺습니다. 이후 제일악극단, 라미라가극단, 신협악극단을 거쳐 1950년에는 1사단 정훈공작대에서 활동하며 더욱 많은 무대 경험을 쌓게 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가극단과 연극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적 역할을 했지만, 1950년대 중반 영화가 성행하면서 가극단의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영화계로의 진출과 1세대 분장사의 탄생

1950년대 후반,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과 함께 송일근 씨의 역할도 점차 변화합니다. 1958년, 윤대룡 감독의 영화 마음의 진주에서 송일근 씨는 배우와 분장사를 동시에 맡으며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분장사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1세대 분장사로서 배우들이 직접 하던 분장을 전문적으로 맡게 됩니다.

송일근 씨는 분장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그 기술을 발전시키고, 한국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60년대에는 영화사 '신필름'의 전속 분장사로 일하며 더 많은 작품에 참여했고, 1967년부터는 분장과 의상 사업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1975년, 분장사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 '화성여관 분장클럽'을 결성해 분장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도 힘썼습니다.

배우, 분장사, 그리고 공동체의 리더로서의 삶

송일근 씨는 단순히 분장사로만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1960년대 초반, 단역 배우들로 이루어진 '영우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영화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역할은 단순히 분장을 넘어서, 영화 산업의 문화적 발전과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의 권익을 신경 쓰는 중재자로서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송일근 씨의 유산

송일근 씨는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업적은 한국 영화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1세대 분장사로서 쌓아온 경험과 기술은 많은 후배 분장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 한국 영화에서 분장의 중요성과 그 기술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화계에서의 다양한 활동은 송일근 씨가 단순히 한 분야의 전문가에 그치지 않고, 연예계의 전반적인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

송일근 씨의 빈소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6일 오전 5시 30분에 진행됩니다. 장지는 경기 화성시 함백산 추모공원으로, 그가 남긴 유산과 함께 영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송일근 씨는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그가 남긴 흔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그가 창조한 아름다운 분장과 영화 속의 수많은 캐릭터들이 그를 통해 빛을 발했듯, 그는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준 선구자였습니다.

송일근 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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